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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불안

한국 교수와 미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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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생성형 댓글 0건 조회 557회 작성일 20-09-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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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대를 나와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사람이 겪은 일이다. 그가 미국에서 십년쯤 교수를 했는데 한국에 한 주를 체류한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 십여 년 하면서 들은 '교수'라는 칭호보다 한국에서 한 주를 머물면서 들은 '교수' 호칭이 더 많았다고 한다.

 미국 교수는 학문을 연구하려고 되고, 한국 교수는 직책을 가지려고​ 된다는 말이 있다. 교수뿐이 아니다. 공직이 대부분 그렇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공직을 가지면 사는 데 지장이 없으니 공적 직위를 선호한다. 9급 공무원에서 대통령까지 마찬가지다. 그러니 일은 엉망으로 하면서 자기 안위를 지키는 공직자가 많다.

  이런 현​상은 관존민비(官尊民卑)의 폐단에서 유래한다. 그러니 교수도 직무보다 직책을 좋아한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교수가 되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도 미국의 수평 문화, 소비자를 우대하는 분위기를 가져오지 않는다. 한국에 오면 언제 미국에서 공부했느냐는 듯이 갑질을 하는 교수도 있다. 못된 짓은 잘 따라서 한다 .

  현대판 선비를 교수라고 볼 때 선비와 비슷한 사람도 있지만 상하질서를 중시하여 학교를 계급 집단으로 보는 교수도 흔하다. 더러는 한국과 미국의 사회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미국 이야기를 한다. 물론 계승범이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에서 선비는 이상적 인간이다. 위정자들이 만들어낸 표상이다. 그러니 교수에게 선비의 모습을 바라는 것도 무리이다. 연구와 강의를 그런대로 수행하면 괜찮은 교수다. 


  정계를 넘보고, 강의와 연구는 소홀하게 하면서 직책과 호칭을 사랑하면 민폐다. 교수는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므로 다른 공직자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그만큼 적어도 학생을 그르치지는 않아야 하고, 되도록 학생의 미래를 열어주어야 한다. 그러니 직책이나 호징보다 연구와 강의에 주력해야 한다. 


  미국 교수 가운데 노벨상을 받은 뒤에도 80이 넘도록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 교수 가운데도 죽도록 공부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다. 연세대 교수를 지낸 김형석이 그렇다. 그는 지금도 신문에 칼럼을 쓰는데 아마 지금 100세일 것이다. 50세에도 교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딴 짓을 하는 사람과는 대비가 된다. 김형석의 칼럼을 읽으면 삼류 정치인 100명은 저리 가라 한다. 학자가 이럴 때 선비라 부를 만하다. 삼류 정치인이 그 칼럼을 읽는지 모르고, 읽는다 해도 그 말을 알아듣기나 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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