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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덫

내가 머리 깎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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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생성형 댓글 0건 조회 529회 작성일 19-05-1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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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미용실과 이발소가 열 곳 남짓 있다. 나는 그 가운데 싸고 그런대로 깎는 곳을 자주 간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생각하는지 그곳에는 손님이 많다.

  내가 단골로 가는 미용에서  나는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산책하거나 도서관에 들렀다가 손님이 없으면 들어가고, 손님이 있으면 다른 때로 미룬다. 해질 무렵에는 손님이 적으니 그때 가는 한이 있어도 다른 손님이 있을 때 기다려 깎는 일은 거의 없다. 머리고 자르고 감기만 하고, 면도도 안 하니 30분이면 이발이 끝난다.

  아내는 자르고 염색하는 데다 오래 기다려서인지 머리를 하려면 한 나절​은 걸린다. 나 같으면 그 시간에 책을 몇 권 읽는데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야 자유다. 나는 머리 깎은 뒤에 잘 깎았느냐고, 어떠냐고 묻지 않는다. 아내는 "머리 괜찮아?", "예뻐?"하고 묻는다. 나는 거기에 뭐라고 응대해야 할지 모른다. 50대 후반이라도 여자는 예쁘다고 해야 하고, 미적 본능을 포기하면 죽는 줄 아는가 보다 할 뿐이다. 나는 잘 깎았든지 잘못 깎았든지 며칠이면 똑같아지고 솔로몬의 말마따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며 누구의 평가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나 또한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 머리 깎으며 미용사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을 이애하지 못한다.

  아내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나 나는 나대로 산다. 가치관이 다르니 머리 깍는 데​ 자원을 되도록 들이지 않으려 한다. 거리를 다니며 그렇게 정성을 들이고, 옷 사는 데 며칠을 투자한 사람이나 그저 길거리에서 사 입은 사람이나 나는 차별을 안 둔다. 학원을 할 때 여고생들이 성형수술을 하고 와서 자기들끼리 크게 바뀌었다고 할 때도 나는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솔직히 바뀐 게 없었으며 더 안 좋아진 듯한 경우도 보았다. 저걸 왜 하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고 학생이 외모에 신경을 쓰는 일을 싫어했다는 방증이다.


  어제 머리를 깎으려고 어머니 간병을 마치고 오는 길에 자주 가는 미용실 안을 바라보니 두 사람이나 기다리고 있어 그냥 왔다. 머리가 길지는 않았으나 산책을 하며 더위를 느껴 여름에 맞게 시원하게 깎으려 한다. 오늘 퇴근길에는 미용실이 비어 내가 머리 깎을 행운을 잡기 바란다. 그런 일에서 행복을 느끼며, 그러면서 절약한 자원을 인생성형에 쓰고 싶다.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이다. 


  아내와 국내 여행을 가끔 가는데 맛집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 줄이 길면 그 집은 피한다. 근처에 다소 한가한 곳으로 간다. 그러면 음식값이나 맛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 한 끼 먹겠다고 몇십 분씩 기다리느니 문화답사를 그만큼 더한다. 그러나 명의에게 몸을 보이려고 기다리는 일은 한다. 목숩보다 귀한 것은 없으니 그 일에는 자원을 투자한다.


   내가 30여 년 성공한 사람을 연구해보니 그들은 대부분 근검하며 살았다. 외모보다 실질을 숭상하며 살았다. 현대을 일으켜 세운 정주영이 구두를 수십 년 신어 떨어졌는데도 그것을 계속 사용하였다. 한 재벌회장이 그와 골프를 쳤는데 옷이 해어져 있어 놀랐다고 했다. 그는 그런 데 괘념하지 않은 것이다.  그가 떠난 뒤 그가 살던 곳을 보니 평범한 사람 거처 같았다는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재벌 창업주 근처에도 못 갈 사람이지만 그들이 사는 태도를 본받을 수는 있다. 그러면 내가 하는 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모든 길은 정상으로  통하니 그러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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