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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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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생성형 댓글 0건 조회 1,389회 작성일 20-03-23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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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을 센 뒤에 두 아들이 자취하는 서울에 서너 번 다녀왔다. 우한 폐렴이 구정 이전부터 시작했으니 조심스런 길이었다. 둘이 함
께 살다 따로 살게 되어 방을 둘이나 얻어야 하는데 전세와 월세를 생각하여 아들에게만 맡기기 저어하여 아내와 함께 서울을 오갔다.

  서울을 갔다 올 때마다 코로나 염려를 했으나 마지막 다녀온 지가 보름이요, 올해 들어 1월에는 동생 제본소에서 알바를 하고 그 밖에는 집에 있​었기에 답답하여 아내와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아내는 개학을 연기하여 집에 있는데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되도록 집에 있으라고 수시로 당국에서 문자가 온다. 물론 다중 시설을 피하여 연가를 내어 서울에 갔을 때도 조심에 조심을 더했다. 어제는 전라북도와 더불어 코로나 감염자가 적은 전라남도를 가보기로 했다. 내가 산골, 곧 전북 진안 출신이라 앞이 터진 바닷가를 좋아하는데 마침 여수 화양에서 고흥으로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고 하여 그곳 구경을 가기로 했다.

  전주에서 여수까지는 전주 순천 사이 고속도로는 타고 갔고, 순천에서 화양면 방향으로 국도, 지방도를 거쳐 고흥으로 가는 섬과 다리를 몇 개 거쳤다. 자가용으로 나들이​하는 사람은 조금 있었으나 봄인데도 관광버스는 보이지 않았으며 대부분 마스크를 하고 다녔다. 고흥 과역에 들러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우리뿐이었다.

  어디로 갈까 하다 아내에게 팽목항에 가볼까 하니 그러잖다.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가보았으니 가자고 한다. 나도 인생성형가로서 6년이 다 되는 역사의  현장, 비극의 장소에 가보고 싶었다. 고흥에서 진도까지 거리가 멀었으나 이왕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이 없으니 진도로 가자고 합의했다.

 

  도와 지방도를 이용하여  고흥, 보성, 장흥, 해남을 거쳐 진도로 들어가는데 다리를 건너 진도에 들어서자마다 발열체크를 했다. 진도는 한국에서 세번 째로 큰 섬이요, 해남에서 들어오는 다리가 하나이니 그 목만 지키면 전염병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 감염자는 열도 안 나니 잡기 힘들겠지만 관광도서인 진도를 지키려고 지자체장이 군인과 공무원을 24시간 방역업무에 투입한다고 하였다. 바깥 온도가 따뜻하여 차내 온도도 높았는데 그 때문에 체온이 올라 통과하지 못할까 살짝 걱정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네비게이션에서 팽목항을 치니 진도항과 같은지 진도항으로 나왔다. 그 항구 옆에 팽목이라는 마을이 있어 진도항인데 팽목항으로도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곳은 진도읍을 지나 남쪽 끝에 있었다. 가는 길은 2차선이요, 구불구불했다.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한 학생은 경기도에 거주하던 터라 그 부모들은 이 길을 얼마나 눈물로 물들이며 오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팽목항에 도착하니 여객선 한 척, 등대와 그 옆에 콘테이너 박스, 국제항구를 내년부터 십여 년에 걸쳐 조성한다는 조감도, 이 시작을 알리는지 옆에는 바다를 매립했는지 터를 잡고 뭔가 지으려는 기미가 있었다. 추모 기념관 등이 보이고, 한 컨터이너 안에는 누군가 근무하고 있었다. 등대 옆에는 삼백 명이 넘는 희생자 이름을 새긴 철판이 놓여 있었고, 등대 가는 얖 쇠난간에는 노란 리본이 수없이 달려 있었고, 깃대에는 잊지 않겠다는 문구를 쓴 깃발이 세우러이 흘러 바람에 절반 이상 찢긴 채 나부끼고 있었다.


  건너 편에 진도 해양경찰서 전망대가 보였고, 사고 현장은 진도 관할이나 팽목항에서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데였다. 팽목항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그 앞에 수많은 섬들이 누워있는 광경은 해가 넘어가자 시커멓게 바뀌었다. 몇몇 사람들이 오가는데 희생자과 관련이 있는지 몇 사람은 막걸리를 들고 등대 옆 희생자 명단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한 사람이 역사인데 고등학생이면 희망을 피우는 시기다. 수학여행은 가장 고단한 시기에 바람을 쐬려 가는 발길이다. 견문을 넓히는 길인데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를 코앞에 두고 참사가 일어났다. 그 원인을 두고는 전문가들이 수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 대책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지만 나는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희생을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만큼 우리는 사건 사고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사건 현장에 있는 책임자, 곧 세월호 같으면 선장과 그 종사자가 일차적으로 판단을 잘못했고, 다음으로는 구난구호를 해야 하는 책임자들 또한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 메뉴얼에 따르기보다 현장에 따라 대응해야 하는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기 일을 스스로 하지 않아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도 제대로 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런 사실을 실감하고 판단력과 대응력을 기른다고 해도 그런 역량이 부족하다.


  세월호 현장을 둘러보고 희생자를 기리며 그런 반성을 하며 이런 사태가 안 나려면 각자가 사령관처럼 생각하며 자기 앞에 닥치는 재난을 스스로 헤칠 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도자는 높은 자리에 있는지라 더욱 책임이 크고 판단을 잘해야 한다. 그가 결단을 잘못하면 한국호가 침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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