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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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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생성형 댓글 0건 조회 464회 작성일 19-04-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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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3월초에 입원했다. 내가 작가이다 보니 낮에도 시간을 낼 수 있어 제반 뒷바라지를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저술은 거의 중단했고, 독서도 제대로 못했다. 대학병원에서는 6인실에 입원했는데 환자와 간병인이 많은데다 수시로 문병인과 의사, 간호사가 드나드니 책을 읽지 못했다. 본래 골방에서 조용해야 읽는 스타일이라 아예 독서할 엄두도 안 냈다.

  마침, 요양병원으로 옮겨 골절 치료를 해야 했고, 어머니도 번잡한 것을 싫어하여 경비가 좀 들지만 일인실에 입원했다. 나는 어머니 간병을 하며 책 읽을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낮에 책 빌릴 시간도 없다 보니 아내에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라고 부탁했다. 한 사람이 열 권까지 대출해주는데 내가 하루에 몇 권씩 읽어대니 아내가 그게 귀찮했는지 두꺼운 책을 빌려 왔다. 바로 이 책인데 올해 내가 읽ㄴ은 130여 권 가운데 가장 방대한 책일 듯하다. 900쪽이 넘는 책이다.

  나는 책을 여러모로 읽는다. 발췌해서 읽기도 하고, 논문 같은 것은 두괄식이면 문단 첫머리를 위주로 읽기도 한다. 책을 꽤 읽다 보니 속독 실력이 붙어 아내가 볼 때는 급속도로 읽어대는 것이다. 이 책도 두껍기는 하지만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이나 유력자의 연설문을 싣고 그에 대해 저자나 타인의 해설을 붙인 형식이라 내용을 간추리면 대동소이한 것으로 크게 줄일 수 있다. 바로 이런 내용이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소유를 죄라고 생각했다.​

   죽음은 없다. 변하는 세게만 있을 뿐이다.

   형제여(서양인), ​우리를 제발 내버려두라.

   나는 대지요, 태양이다.

​   어머니는 대지요, 아버지는 태양이다.


   류시화가 인도의 자연과 신앙을 예찬했듯이 여기서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사상과 언행을 칭송한다. 얼굴 흰 사람, 곧 서양인들 파괴자로 묘사하며, 그 탐욕이 선량한 인디언을 말살했다고 본다. 약한 사람, 죽어가는 사람, 소외자를 옹호하는 류시화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에 따르면 서양인은 정부 체제, 종교, 탐욕적 예술은 물론 나쁜 습관과 질병 등을 들여와 인디언을 말살했다고 한다.


  그 마음이야 거룩하다. 그런데 인디언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문명의 충돌을 겪은 뒤에 그들은 어떻게 사는가. 오늘날 그 9할 이상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 원인이 서양인에게 있기도 하지만 자신을 못 지킨 인디언에게는 책임이 없는다. 문명은 결국 강약의 충돌인데 거기서 지면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하여 프랑스의 영광은 사라졌으며, 몽골의 승리도 흔적이 없다. 우리가 일본을 욕할 수 있으나 우리가 나약하여 진 것은 어찌할 것인가. 방어하지 못하고 공격자만 나무라는 것은 인류사가 곧 전쟁사인데 약자의 논리다. 


  무소유를 외치지만 인류는 소유욕에서 발전했다. 탐욕을 혐오하나 남한이 북한보다 수십 배 잘사는 이유가 탐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그 탐욕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지, 본능에 가까운 탐욕을 거새할 수는 없다. 처들어간 서양도 나쁘지만 그것을 막지 못한 인디언도 선은 아니다.


  류시화가 높게 본 인디언 정신은 본받을 만하나 적자생존이라는 엄연한 원리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자신이 지키지 못하는 권리를 다른 사람이 지켜주지 않는다. 승자를 무조건 예찬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자는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승자는 자기 본위로 역사를 쓴다. 동서고금을 떠나 그 원칙은 일관적이다.


  나는 나다. 그 나를 지키려면 이념이나 종교를 떠나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그 생존이 상대적일 때는 아무튼 살아남고 보아야 한다. 생존이 항상 착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숭고한 생각이라도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허무하다. 인생이 그런 것이니까.


  내가 나이려면 나를 믿고 나를 지켜야 한다. 내가 쓴 <난 날 믿어>는 그런 주제를 담았으며, 그런 생존논리로 나는 살아간다. 그런 뜻에서 약자를 옹호하되 자신을 지킬 힘을 기르자고 노래한다. 하여 고상한 정신도 중요하나 그것을 유지할 힘을 그 못지않게 우러러본다. 승자가 내 편이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은 자신이 지켜야 남이 도와준다는 이야기다.


  나는 류시화 철학을 인정하고 그가 미화한 인디언 정신을 긍정하나 그것을 지켜내지 못한 인디언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현실은 냉정하며 문명은 부딪치며 흘러왔고, 생존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는 있으나 힘을 얻기는 힘들다. 요즘 팔리는 책을 보면 여행서나 가벼운 에세이가 많은데 나는 힘을 얻으려면 좀 딱딱해도 생각하게 하는 책, 쓴소리하는 책을 읽는다. 공감이 중요하나 실력은 더 긴요해서이다. 머리에 부담을 주는 책이 힘을 주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는 패자의 말이요, 작가는 패자로 보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패자가 패자를 옹호하는 것은 동병상련이다. 그러나 나는 약자를 달래는 길로 약자의 노래보다 승자의 길을 보여준다. 그래서 류시화도 보아주나 공병호를 더 좋게 본다. 내가 약자에서 승자가 된 사람, 삼류에서 일류가 된 사람을 찬송하는 까닭이 이렇다. 인생성형이 바로 개천에서 용 되기와 비슷한 연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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